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스 샤워 (문단 편집) ==== [[타카라즈카 기념]] ==== [youtube(i35i-i30UqY)][* 정식 경기 영상은 아니고 당시 기수이자 현재는 조교사인 [[마토바 히토시]]의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당시 1995년 타카라즈카 기념 경기이다. 이 영상에서는 당시 경주 영상과 함께 라이스 샤워와 영원한 이별을 하며 느꼈던 감정과 그로 인한 회한의 눈물을 쏟는 마토바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후 [[타카라즈카 기념]]이 [[고베 대지진]]의 여파로 한신 경마장에서 항상 실적이 좋았던 교토 경마장으로 이전 개최되자 좋지 않은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강행했다. 강행 출전한 이유는 단순히 삼관마 [[나리타 브라이언]]의 부상과 교토 경마장과 상성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1995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라이스 샤워는 팬 투표 득표수 105,779표로 1위로 출마권을 얻었는데, 미호노 부르봉의 훈련 기법이 알려진 후 칸사이 출신 말이 초강세였던 시기에 보기 드문 칸토 출신 G1마인 라이스에게 큰 기대가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팬들이 있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프로 스포츠이고 선수이니만큼 출전에는 [[팬 서비스]] 목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출마를 결정한 시점은 후술할 JRA의 지원 약속이 있기 이전이었는데, 그 때까지의 라이스 샤워는 초장거리에서만 빛을 보는 스테이어 형질로 인해 상술하듯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경기의 숫자가 매우 한정되어있던 탓에 종마로서의 선호도가 바닥을 기었고[* 이는 라이스 샤워의 체구가 작은 것도 한몫 거들었다. 마체가 작은 종마는 그 작은 체구를 자손들에게 물려줄 가능성이 있는데, 작은 체구는 장거리 경주에서는 스태미나 관리가 용이해 유리한 형질이지만 일본 경마의 중심인 중거리 경주에서는 몸싸움과 가속력 면에서 불리한 형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퇴 후의 미래가 매우 불안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스 샤워는 살아남기 위해 중거리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 이후 세대의 같은 사례로, 2004년 킷카상과 호주의 국민적 축제인 멜버른 컵을 일본조교마 사상 최초로 우승한 [[델타 블루스]]는 씨수말이 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은퇴했으며, 라이스 샤워 이상의 끔찍한 유리몸에도 불구하고 사상 네번째 킷카상+[[천황상]] 2연패를 달성한 [[피에르망]]은 G1 우승수가 더 딸리는(하지만 중거리인 [[아리마 기념]]을 이긴)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1군격인 샤다이 스탤리온 스테이션에 입성한 것과는 달리 씨수말 2군격인 브리더스 SS에서 씨수말 생활을 시작한 예가 있다.] 그리고 직전 우승한 천황상(봄)과 비교해 주행 거리를 제외하고는 조건이 유사했기에 정상적으로 주행만 해준다면 우승까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던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진영에서는 라이스 샤워가 경기 전까지 컨디션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만 더 주행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출전을 강행한 것이었다. >(분할화면 위쪽에서 라이스 샤워가 쓰러지면서 관중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ライスシャワー落馬! ライスシャワー落馬であります! 大波乱!大波乱!''' >'''라이스 샤워 낙마! 라이스 샤워 낙마했습니다! 대파란! 대파란!''' >---- >스기모토 키요시(杉本清) [[간사이 테레비]] 아나운서의 라이스 샤워 낙마 당시 중계멘트. 4코너 직전에 오른앞다리에 개방 골절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일반 골절도 말에게는 치명적인데 뼈가 피부를 찢고 튀어나올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라 이송조차 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안락사]]되었다. 지금까지도 관련 매체에서는 라이스 샤워의 마지막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VDUdlGtjvM&t=5686s|사후 촬영된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낙마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나레이션으로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비명으로 바뀌었다는 식으로만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위의 다큐멘터리 동영상에서는 견학을 온 아이들에게 말과 함께하는 일의 무거운 책임감을 알려주기 위해 1:20~1:50에서 쓰러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우마무스메 역시 라이스 샤워처럼 경기중 골절로 안락사당한 [[사일런스 스즈카]]는 (실제 역사와 달리 부상을 극복하고 복귀한다는 IF 스토리로 변경되었지만) 경기중 부상 에피소드를 구현한데 비해 라이스 샤워는 주역으로 나오는 게임판 메인스토리 2장에서 라이스 샤워가 영웅이 된 [[천황상 봄]]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끝마치며 의도적으로 부상 에피소드를 생략했다.] 향간에는 라이스 샤워의 기수는 은퇴전인데다 라이스 샤워의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으니 천천히 몰았는데 라이스 샤워가 갑자기 흥분하여 [[급발진(은어)|급발진]]하는 바람에 그런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짓이다. *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고, 기수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 1995년 타카라즈카 기념 경기를 보면 라이스 샤워는 개방골절 발생 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는데 이는 이전 천황상(봄)에서의 혈투로 약해진 다리의 극심한 피로로 인해 골절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 그러나 이 때문에 천천히 몰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경마는 관중의 마권과 돈이 걸려있는 경기이고, 타카라즈카 기념은 상반기 그랑프리 레이스로 인기마들이 집결하는 무대인데 이런 무대에서 팬 투표 1위를 받고 3번 인기를 받아 출주한 말이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의도적으로 천천히 달리게 하면 돈을 잃게 된 사람들의 극심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그다지 기대받지 않는 저인기의 말이면서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1991년 아리마 기념에서 꼴지로 들어온 오스미 샤다이가 이런 사례이다. 오스미 샤다이는 당해 타카라즈카 기념 후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하고 종마를 준비하던 중 아리마 기념을 회피하는 말들이 많아지자 경주 후 은퇴식을 조건으로 출주하게 된 케이스이다. 이러한 제반 상황이 있었던 만큼 몸 상태는 엉망이었고, 따라서 기수는 우승이 아닌 완주를 목표로 오스미 샤다이를 의도적으로 최후방으로 빼 천천히 달리게 해서 마지막 착순으로 골인했다. 경마 팬들은 이미 매체를 통해서 오스미 샤다이의 근황 및 출주 과정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마권을 구입하지 않아 인기 순위도 꼴찌였고, 당시 비출혈로 인해 완전히 퍼져버린 [[트윈 터보]]보다 더 늦은 최하위로 들어왔음에도 관중들의 비난과 반발을 받지 않았다. ]나 정말로 경기 중 이상이 발생한 경우[* 예시로 2021년 5월 빅토리아 마일에서 노스힐즈 소속의 이베리스라는 말이 경기 중 갑자기 속도가 떨어지며 최하위로 쳐졌는데, 기승했던 사카이 마나부 기수는 거의 속보 정도까지 속도를 늦춰 결승점을 통과했고, 경기 후 진단에서 심방세동이 판명되었다.]가 아니면 일부러 천천히 달리게 하기가 어렵다. 마토바 기수 또한 경기 당일까지 라이스에게서 예상했던 수준의 컨디션 저하를 제외하면 경기를 뛰면 안된다는 징조를 느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 흥분하여 급발진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마토바 히토시 기수는 중후반을 달리다 3~4코너 부근에서 이전 천황상(봄)처럼 스퍼트를 걸었는데 라이스 샤워는 이에 반응하려다 부상이 발생한 것 같다고 다큐멘터리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라이스 샤워는 천황상(봄)에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기수가 스퍼트를 걸 것이란 걸 깨닫고 치고 나갔었고 그와 동시에 기수 또한 스퍼트 신호를 내 선두로 나갔었는데 타카라즈카 기념의 급발진 이야기는 앞선 천황상에서의 사례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 샤워와 관련된 여러 매체 보도에서도 급발진에 대한 관계자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 * 라이스 샤워는 해당 경기를 은퇴전이라고 공표한 적이 없다. 진영에서는 은퇴를 시킬 시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일단 말이 달리고 싶어하는 한은 최대한 달리게 하고 싶어했으며 타카라즈카 기념에서의 성적에 따라(즉 무리없이 호성적을 거둔다면 다음 경기도 내보내고 그렇지 않고 상태가 더 악화된다면 은퇴하는 식으로) 추후의 거취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했듯 경마는 관중의 마권과 돈이 걸려 있는 만큼, 말의 상태가 이유가 되어 은퇴 경기를 하게 될 경우 앞서 언급한 오스미 샤다이의 예처럼 매체나 발표등을 통해 외부에 대응하여 최대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데 1995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라이스 샤워는 이런 절차가 전혀 없었다. 이는 라이스 샤워의 진영에서 정상적으로 경기를 할 것이라고 표명한 것이다. 또한 이 경기가 라이스 샤워의 라스트 런이 맞다면 이에 대해 중계진 쪽에서도 언급을 했을텐테 JRA 공식 중계에서도, TV 중계에서도 전혀 관련 발언은 없었다. 이 경기는 이전까지의 이미지였던 다른 도전자들을 가로막는 장벽이자 악역, 또는 그저 승리가 유력한 주자로써의 인식과는 달리 타카라즈카 기념 팬 투표 1위에도 나타나듯이 칸토 지역 팬들의 기대를 짊어지는, 승패와 무관하게 모든 대중에게 인정과 응원을 받는, [[마지막에 패배하는 주인공|주인공]]으로서 참전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또한 종마에서 선택받지 못해 현역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JRA가 라이스 샤워의 희귀한 스테이어 형질의 보존가치에 다시금 주목하면서 종마 생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약속했었다.[* JRA는 중소형 목장에서도 교배료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종마를 제공하는 일종의 공공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경주마 거리 적성의 다양성을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JRA 소속 종마로 들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간혹 라이스 샤워의 타카라즈카 기념 출주가 JRA의 요구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JRA의 종마 지원 약속은 마주의 타카라즈카 기념 출주 선언 이후였다.] 다시말해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이 경기를 무탈하게만 마무리 짓는다면 평온하고 행복한 말년이 보장되어 있었다. 당시 라이스 샤워의 기수였던 [[마토바 히토시]]는 낙마 당시 큰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보통 말이 개방골절을 일으킬 때 앞으로 고꾸라져서 넘어지기 때문에, 말은 물론이고 기수 역시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고 심한 경우 기수 역시 목숨을 잃기도 한다. [[타케 유타카]]도 2010년에 더 타이키가 개방골절을 일으켜 낙마하면서 큰 부상을 입어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고, JRA 소속 기수 중 19명이 낙마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라이스 샤워는 넘어질 때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비스듬하게 뒤로 쓰러졌고 부상이 일어날 당시 라이스 샤워는 어떻게든 버텨보려다 결국 넘어지는데 이 때 실속하면서 말이 다 지나감과 동시에 완전히 쓰러진 탓에 다행히 마토바 기수는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 한동안 정신을 잃었던 탓에 라이스 샤워가 죽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이후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라이스가 죽었을 리가 없다,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며 한동안 라이스 샤워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안락사 후 차에 실려 경기를 떠나는 라이스 샤워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걸로 파트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고 한다. [[1995년]] 교토에서 열린 이 제36회 [[타카라즈카 기념]]은 라이스 샤워의 죽음 뿐만 아니라 우승마 단츠 시애틀[* 해당 경주에서 2, 3등마와 코 차이 수준의 접전 끝에 비와 하야히데의 기록을 깨뜨리며 새로 레코드 갱신을 했음에도 라이스 샤워의 비극에 묻혀 주목 받지 못했다.], 12착 초카이 캐롤, 16착 [[나리타 타이신]]이 부상으로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고 3착 [[에어 더블린]][* 1997년 이후 은퇴한 뒤 종마 생활을 하다가 2003년 한국으로 건너와 씨수말이 되었으나, 뚜렷한 성과는 남기지 못하고 2016년 죽었다.] 또한 계인대염 부상으로 무려 2년간의 장기 휴양에 들어가는 등 전체적으로 이 경마 대회 자체에 마가 낀 듯한, 비극적인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